[독후감] `홍길동전` 을 읽고

2009/06/25 14:27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지금 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사람 홍길동.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홍길동전으로 에세이를 쓰려고 마음을 먹고있을 때는 꿈에서 홍길동이 나타나서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하하하.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좀 써먹어 보자면 홍길동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길동이 활빈당을 만들어 활동하는 부분이고 하나는 조선을 떠나 율도국으로 가서 겪는 이야기이다. 첫 번째 부분은 너무 잘 알려져 있기도 하고 가장 많이 접했던 부분이라 나에게 에세이를 쓸 만한 아무런 영감도 가져다 주지 않으므로 두 번째 부분인 - 부끄럽지만 대학 와서 처음 읽어 본 - 율도국 부분만을 가지고 다루어 보려고 한다.

  훗날 개작되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이 이야기는 첫 번째 부분과는 다르게 군담소설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배우고 읽어보니 역시 무언가 보였다. 길동이 율도국을 정벌하러 가서 벌이는 전투 장면을 읽으면서 불현듯 삼국지가 떠올랐다. 삼국지에서 수도 없이 나오는 것이 전투 장면인데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나 싶게 너무도 닮아있었다. 나는 특히 많은 부분 중에서 동탁을 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연합군을 만든 장면이 떠올랐다. 아직 그때까지 졸장에 지나지 않았던 유비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입장이었다. 싸움에서 연합군 쪽이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을 때 조조의 명으로 수염을 휘날리며 전투에 나아가 데운 술이 식기도 전에 적장의 목을 베고 돌아와 아직 따뜻한 술을 마시는 장면이었다. 길동 또한 율도국을 정벌할 때 김인수, 맹춘 등에게 군령을 내려 전투를 지시한 후 그들은 길동의 명령에 따라 적의 장수와 말을 몰아 몇 합을 싸워 그 목을 베 승리를 이루어 내는 것은 전 이야기에서 자신이 직접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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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에스키모에게 얼음을 팔아라‘를 읽고..

2009/06/25 14:27


 에스키모에게 얼음을 판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그리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 책의 제목부터 나의 마음을 끌었다. 어떻게 하면 에스키모에게 얼음을 팔 수 있을까?
  이 책의 지은이 존 스포엘스트라는 네츠라는 구단을 스포츠 마케팅으로 점프마케팅을 정립시킨 사람이다. 그의 경험이 바탕이 된 이 내용은 스포츠뿐만이 아니라 모든 회사의 마케팅에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이라 감명깊었다.
  생각하지 못한, 쉽게 넘어갔던 경영에서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큰 회사이건 작은 소매점에서도 적용되는 고객만족 마케팅은 나의 생각에도 큰 변화를 주었다.
  모든 상품에는 장점이 있다. 단점이 많더라도 하나의 장점을 부각시켜 판매하는 것. 꼴지 상품을 1등으로 판다는 것이다. 사장이라는 지위에서 고객을 대한다는 것은 일반 회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고객의 불평을 1:1로 사장이 직접 해결하며 고객을 직접 대하는 판매사원이나 영업사원을 직접 뽑고 관리하는 사장의 경영방법은 회사를 좀더 좋은 분위기로 유도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의 내용에서 나의 마음을 끌었던 것을 세가지로 요약한다면 첫 번째는 두뇌집단 활동을 하는 것이다. 지은이가 말하는 고유명사이기는 하지만 두뇌집단 활동은 하루에 5가지씩 혁신을 위해 생각하고 일주일동안 생각한 것을 모아 쓸만한 내용들을 자연스럽게 얘기하며 발전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장이 직접 고객이 겪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면도기나 비누를 생산하는 큰 업체의 사장이 운전기사를 둔 자가용을 타지 않고 출근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다. 직접 자신의 제품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대하면서 제품에 대한 얘기는 하지는 않지만 큰 도움을 얻는다는 점이다. 나에게 생각의 변화를 주었다.
  세 번째는 고객을 영웅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고객은 왕이 아니라 친구이다. 고객의 데이터는 쓸모없는 쓰레기가 아니라 회사에 이윤을 남겨주는 영웅이다. 정기적인 단골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며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객이 틀린 불평을 해도 고객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속아넘어준다는 것이다. 그런 고객이 몇 되지 않기 때문에 회사의 이윤에 큰 문제는 없으며 그러한 손님들이 장기적인 고객으로 연장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내가 패스트푸트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가 생각이 났다. 엔젤인 나는 고객서비스를 맡아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가끔 손님이 크레임을 걸어올 때가 있는데 무조건 죄송하다고만 하며 그에 대한 해결책만 마련해줄 뿐 손님의 기분이나 그 다음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속아주며 다시 찾아오게 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영을 하면서 매출이 떨어질 때가 있다.
2009/06/25 14:27 2009/06/2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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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고전소설 박씨전, 사씨남정기를 읽고

2009/06/25 14:27


고전소설 박씨전을 읽고...
문학적 개연성의 측면에서 바라본 박씨전...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를 읽고...
그녀는 과연 행복했을까?


박씨전을 첫번째 에세이 과제로 선정한 이유는 박씨전이 교과서에 실려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박씨전을 보고 놀란 것은 처음 박씨전을 대할 때 이 작품을 납득하기 어렵고 무척 황당한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선 무엇보다 이 작품은 소설의 개연성의 측면에서 무척 합당하지 않은 작품이며, 학생들이 읽기에(독해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문학 교과서에 현대어 번역이 아니라 고문에 가깝게 올라온 작품은 읽기 상당히 버거웠다)
 그런데 이 박씨전이 7차 교과서에서 중3교과서에는 물론이고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까지 실린 것을 보고 많이 의외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작품이 임진록과 함께 조선시대 전쟁 상황에 대한 우리의 대응 의식을 보여주고(패배한 전쟁에 대한 보상 의식) 있다는 점과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등에서 그 의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물론 그 두 가지 점에서 이 소설의 의의를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설은 개연성이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데 이 소설은 그 개연성의 측면에서 홍길동전이나 금오신화보다 더욱 황당한 측면이 많다. 무엇보다 거슬리는 것은 박씨의 능력 중 모든 미래의 상황을 내다보는 것인데(박씨는 처음 천리마를 사는 일부터 비롯해 청나라가 처들어오는 일까지 모든 상황을 보거나 예측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신(神)적 경지에서 모든 상황을 알고 예지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박씨의 이런 능력은 소설을 읽는 중간 중간에 작품에 몰입을 방해하곤 했다. 이것은 홍길동처럼 사건 속에서 상황을 예측하거나 하는 수준 또는 선(仙)적인 경지에서 환상적인 요소가 개입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신의 경지이다.
 만약 이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이 한 나라에 있다면 아무리 천운이 불길해서 그렇다하나 우리나라가 전쟁에서 패하는 일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차라리 박씨의 예언력의 정도를 조금 줄이고 대신 용력(勇力)이나 무예의 출중함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또, 개연성의 측면과 작품의 전체적 흐름에서 이시백이라는 인물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시백이라는 인물의 출현에는 유충렬전에서 유충렬이라는 영웅이 태어난 것과 비슷한 상황의 전개에 의해 뒷받침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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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구운몽을 읽고

2009/06/25 14:26


나도 이런 꿈 꼭 꿔보고 싶다......

  九 雲 夢을 읽고

 고전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적이었다. 책과 거리가 먼 나는 서점과는 관계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만화책 정도가 나의 독서의 전부였다. 그런 생활을 하던 나에게 어느날 서점에 우연찮게 가게 되었다.(진짜 이런 우연이 꼭 오늘의 수업을 위해 들린 것 같았다) 이것저것 책을 뒤적이던 나는 만화책으로 된 구운몽을 보게 되었다. 이게 모지라는 호기심 반 관심 반으로 진짜 큰맘을 먹고 내 돈을 주고 구입을 했다.(이것이 내돈주고 책을 샀던 처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2009/06/25 14:26 2009/06/2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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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박씨전을 읽고

2009/06/25 14:26


 조선시대의 영웅호걸, 박씨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조선시대의 영웅호걸이라고 붙여보았다. 영웅호걸하면 흔히 남성을 떠올리기 때문에 여성이란 말을 붙여야 하는 건지 고민하였으나, 영웅호걸은 비단 남성의 대명사만은 아니란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의 고전작품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모두 남성이고, 여성은 그런 남성의 전유물에 지나지 않게 그려진 작품이 대다수였기에, 영웅호걸이 여성이란 사실이 익숙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오히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남성이 아닌 여성이기에 박씨가 더욱 영웅화되는 것은 아닌지란 생각에 순간 박씨가 대단하게 느껴졌으나, 한편으로는 나 역시 한 여성으로써 씁쓸해 지기까지 한다. 물론 남녀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부터 영웅호걸=남성이란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하였다.
 흔히 병원에 가면 예쁜 간호사 언니와, 마음씨 좋게 생기신 나이가 지긋해서 흰머리가 어울리는 의사선생님을 그리고, 군인은 씩씩한 남자, 스튜어디스는 친절하고 예쁜 미소가 인상적인 아름다운 여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편견은 잘못되었다. 여성은 반드시 여자다워야 하고 아름답고 친절해야 한다는 식의 편견이 점점 더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것이다.
 5월이 되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한다. 나 역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예쁜 언니들이 많이 나와서 놓치지 않고 보았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내 눈엔 화장이 너무 짙어서 얼굴이 예쁜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예쁜 드레스를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시작되면서부터 나름대로 심사위원이 된다. 나 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말이다. 그리고 누가 더 예쁘다 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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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베인톤의 `루터의생애`을 읽고

2009/06/25 14:26


Ⅰ.서론
Ⅱ. 본 론
 1. 루터의 수도원 생활
 2. 개혁의 시작
 3. 개혁의 전개
Ⅲ. 결론


Ⅰ.서론
  한 사람의 생애가 한 종교를 아니 더 넓게 한 시대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여기 제가 확고 부동하게 서있습니다. 나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몸을 도우소서."라고 고백하고 있는 약해 보이지만 강했던 한 사람의 진리에 대한 고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는 점점 거리를 멀리하며 본질과 상관없는 주변의 것만을 붙잡고 배를 불리던 캐톨릭(교회)에 회개 촉구와 갱신의 기회를,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 대한 진리의 회복과 프로테스탄트라는 새로운 종교운동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한 사람으로 인해 엄청난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종교의 흐름이 바뀌고 시대의 흐름까지도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한 사람이 바로 종교개혁자 마틴루터이다. 그가 당시 로마 캐톨릭의 일원으로 수많은 개혁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의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전통보다는 말씀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처절한 싸움의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루터에게 물러설 수 없는 확신이 되었고 그것이 그를 계속해서 개혁의 불을 당기도록 몰아갔던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모로 루터의 개혁을 도우셨다. 주변의 사회적인 사상의 흐름과 국가적인 흐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도울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이것은 루터 혼자만의 승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승리이며, 많은 나라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누릴 승리였던 것이다. 우리도 지금 그 승리 위에 서 있다. 이것 또한 무시 못 할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에
2009/06/25 14:26 2009/06/2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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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사씨남정기를 읽고.

2009/06/25 14:25


수업시간에 사씨남정기를 배운 뒤 직접 사씨남정기를 읽었는데, 굉장히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사씨와 교씨의 선악구도에 관한 것이었는데, 내가 오래 전에 읽었던 바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사씨는 어질고 착하며 교씨는 교활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수업을 들으면서 반드시 교씨를 나쁘다고 만은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듣고 굉장히 놀랐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사씨남정기를 읽어보았는데 정말 헷갈려서 정신이 다 없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씨는 그 욕심을 끝없이 부려보려고만 하고, 적절히 억누르는 데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사람이 어찌 자기 욕심대로만 살겠는가?
 교씨가 처음부터 악한 마음을 먹고 후실로 들어간 것 같지는 않다. 먼저 첩을 들이자고 청한 사람은 사씨였으며, 처음에는 분명 사씨와 교씨 사이가 좋았다. 한림과 사씨가 부부가 된 뒤 십 년이 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어 교씨를 들인 것이니, 교씨가 아들을 낳기 위해 점을 보고 수를 쓴 것은 분명 잘못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교씨가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는 것에 대해 사씨가 훈계한 일에서부터 교씨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첩이 아까 심심하기로 노래를 불렀더니 부인이 듣고 불러 책하시되, 요괴한 노래로 집안을 요란케 하고 상공을 미혹케 하니, 네 만일 이후에 또 노래를 부르면 내게 혀를 끊는 칼도 있고 벙어리 만드는 약도 있나니, 삼가 조심하여라 하시니 첩이 본래 빈한한 집 자식으로 상공의 은혜를 입사와 부귀영화가 이같사온데, 비록 죽어도 한이 없겠나이다.

 교씨는 이처럼 사씨에게 들은 바와 다른 말을 한림에게 전하면서 투기한다. 역시 나쁜 짓은 한 번 저지르는 것이 어려운 거라고, 교씨는 끊임없이 흉악한 일들을 꾸며낸다. 그 중에서 가장 끔찍했던 짓은 교씨 자신이 낳은 자식을 죽인 일이다. 어찌 어미로서 자기가 배아파 낳아 기른 자식을 죽여 이용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2009/06/25 14:25 2009/06/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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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사씨남정기를 읽고

2009/06/25 14:25


고전소설을 읽고 그것을 지금 내 생활이나 지금과의 비교에 비추어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래 전에 지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단지 읽고 그 당시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인물은 단지 평면적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고전소설의 전기적 요소도 한 몫 했다. 는 초등학교 때 만화로 그린 작품으로 처음 읽었다. 재미있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때를 더듬어 생각해보면 사씨를 괴롭히는 교씨의 악행이 빨리 드러나기만을 바라면서 보았다. 당시 그 책을 그린 사람의 관점이 완전히 사씨로 쏠려 있었나 보다. 그렇게 읽었던 인데 저번 학기에 과제를 내느라고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과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기는 했지만 처음엔 사씨와 교씨의 선악구도로 밖에 보여지지 않았다. 잘 몰라서 몇 번을 다시 읽어보니 약간의 의문점들이 생겼다.
 내가 중학교 시절에 좋아하던 가수 모 그룹의 사진을 얼마 전에 우연히 보았는데 얼마나 촌스럽게 여겨지던지…… 그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모 그룹은 정말 멋있었는데 말이다. 이처럼 시간은 사람들의 생각과 눈을 무척 빨리 변화시키는 것 같다. 과거 고대소설의 대부분의 주제인 권선징악이 현대에 우리에게 있어서 별로 감흥을 못 느끼게 하는 것은 지금의 우리의 사회상 그리고 우리의 모습에 있을 것이다. 그 예로 의 흥부가 과거에는 착한 사람으로만 보여졌다면 지금 우리는 흥부가 착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의 무능함에 대해서는 비판을 한다. 김만중이 를 쓸 당시 사회의 관념이나 생각은 작품 속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문학 작품도 시대 속의 개인의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이리라.

 사람이 살면서 욕망을 가지게 되는
2009/06/25 14:25 2009/06/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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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숙영낭자전을 읽고

2009/06/25 14:25


숙영낭자 보시오.

 나는 낭자의 사랑이야기를 책으로 읽은 사람이오. 읽고 나서 느끼는 바도 많고, 사실은 당신과 선군의 사랑이 너무 부러웠다오. 아, 낭자는 선녀라 나이가 상상을 초월하도록 많겠지만, 나는 그저 편한 대로 말을 놓겠소이다. 나는 올해 스물 한 살이 되었소. 작년까지만 해도 꿈 많고 설레는 스무 살 꽃다운 처자였소.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들어가면 남자친구는 거저 딸려오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제로 일년을 그냥 보내고 나니 마음속에 구멍이 뻥 뚫린 듯 허전하더이다. 나도 나름대로 꿈꾸는 사랑이 있는 것을. 왜 그런 거 있잖소. 소녀의 로망이라고. 하하.
 선관과 임낭자도 아직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는 거요? 나는 사실 선관이 부인을 둘 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소. 여타 고전을 읽어봐도 한 남자가 부인을 여럿 두는 일이 허다하지만 나는 그래도 이해할 수 없구려. 한 남자가 한사람을 사랑해야지 어찌 여럿을 두고 사랑한다는 말이오? 만약 내가 낭자와 같은 처지에 있었더라면 절대로 임낭자를 부실로 들이지 못하게 했을 것이오. 부실로 들였어도 같이 자식 여럿 낳으며 행복할 수 없었을 것 같구려. 요즘은 한남자가 부인을 여럿 거느리는 것은 불법이오. 더군다나 그런 경우에는 처자들도 모두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소. 그러니 내가 삼부부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오.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선군이 과거를 보러 떠났을 당시에 일어났던 일이오. 선군이 낭자를 너무 보고싶어해서 그 그리움을 참을 수가 없어서 떠난 지 하룻밤만에 몰래 다시 낭자를 찾아왔던 일을 기억하오? 어찌나 보고싶었으면 가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찾아 왔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소. 하긴, 선군이 낭자를 집에 들이고 나서는 학업에 아주 뜻을 접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바로 다음날 밤에도 또 낭자를 찾아와 함께 한 것을 보니 선군은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더이다. 낭자가 선군이 꼭 급제해야만 한다는 굳은 의지를
2009/06/25 14:25 2009/06/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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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심청전을 읽고

2009/06/25 14:24


 유교, 불교, 도교. 작품 찢어 보기에 입각해 어디에 속한 작품인고 하니 참 어렵다. 아는 것일수록 더 모른다는 말이 맞는 건지, 누구를 앞에 놓고도 이야기를 줄줄 엮어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심청전이 처음 입는 옷처럼 꺼끌하게 느껴졌다. 굳이 사상이니 문체니 주제니 하는 것들 들먹거리지 않아도 충분히 새로웠다. 이 정도면 고전 읽기의 반쯤은 성공이지 않을까?
  청이가 10여 세 되던 무렵부터의 이야기를 알고 있던 나는 그 전에 이렇게 많은 사연들이 포진해 있을 줄은 몰랐다. 성품이 착하고 청이를 낳자마자 죽었다는 곽씨부인이 이 작품에서 이렇게 비중 있는 인물인지도 몰랐고 마냥 가엽게만 느껴졌던 심봉사가 원초적(?) 성격을 가진 정말 정말 무능력한 인간이라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그저 착하게만 생각되던 심청이가 무모하다하는 생각 역시.
  이쯤에서 내 문학적 배경지식을 꺼내본다. "고전소설의 특징 中 - 평면적 인물 유형". 일리 있는 말이다. 그. 러. 나. 한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소설은 인간이 썼다는 것, 프로이드의 말을 빌리자면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어진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절대 무작정 착하지 만도 나쁘지 만도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복잡한 감정을 소유하고 있다. 소설 속 인물은 단편적 인물형이 특징이 될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다면적인 인간의 모습이 작가도 모르게 스며들어 있다. 그 애교 수준으로 감추어진 이면을 찾아보는 것도 니쁘진 않은 것 같다.
  가장 새로 보게 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심봉사다. 여자 팔자 잘 타고나서 잘되는 인물이라고 표현해 주고 싶다. 경제 능력
2009/06/25 14:24 2009/06/2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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